전체 글(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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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흔들리는 차창에 기댄 얼굴들,고단한 하루가 벌써 스며 있고,어떤 마음을 숨겼는지 모를 무표정은회색 도시의 일부가 된다.저 편에선 재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방 가득 내일의 꿈을 채웠을까.문득, 나에게 묻는다.내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기억의 서랍을 아무리 뒤져봐도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할 뿐,가슴 한편이 아련히 서글퍼진다.괜찮다, 속으로 되뇌인다.하늘의 별 같던 꿈은 잃었어도,나에겐 세상 가장 따뜻한 이름이 있으니.나의 꿈은 이제, 가족.피곤에 찌든 얼굴 위로사랑하는 이들의 미소를 겹쳐본다.그래, 오늘도 나는 이 꿈을 위해 달린다.나의 하루는, 나의 걸음은곧, 나의 꿈으로 향하는 길이기에.
2025.07.07 -
마모된 웃음
잠실의 쨍한 햇살 아래서른의 젊음이 육십의 세월에게"비켜"한마디 툭, 던진다비키라니까짜증 섞인 소리에육십의 어깨가 흠칫,그러나 얼굴엔마모된 웃음이 걸린다저 웃음 뒤에 숨겨진수많은 새벽과 땀방울을서른의 조급함은 알까투명한 유리창처럼마음이 훤히 비춰져지켜보던 내 가슴이 시리다인격의 무게는나이테에 새겨지지 않음을거지같은 그의 언행이소리 없이 증명한다애써 지은 웃음이가장 아픈 울음임을나는 보았다잠실의 하루는 그렇게누군가에겐 빛나는 무대였고누군가에겐 소리 없는 상처였다
2025.07.06 -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차가운 기계 소리, 하얀 조명 아래두 눈 질끈 감아도 공포는 선명하다.내 안의 단단한 일부를 허무는서늘한 예고에 온몸이 떨려왔다.윙, 뇌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음과뿌리째 뽑혀 나가는 아찔한 감각.죽어가는 신경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세상이 잠시 하얗게 무너져 내렸다.입안 가득 차오르는 비릿한 붉은 맛,솜을 물어도 아픔은 파도처럼 밀려온다.아프다, 아프다, 아프다.소리 없는 절규가 목구멍을 채운다.결국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흘렀다.이것은 아픔인가, 서러움인가.이제는 텅 비어버린 그 자리에시린 바람만 머물다 간다.
2025.07.05 -
어느 큰 나무 아래서
푸른 잎사귀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당신도 나도 작은 묘목이었을 때가있었습니다.서로의 그늘을 재지 않고투명한 햇살을 나누던 때가 있었습니다어느덧 빽빽한 숲이 되고당신은 가장 높은 나무 중 하나가 되셨습니다나는 그저, 그 아래 이름 모를 들꽃 하나나는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그 거대한 그늘이 고마웠습니다세찬 비바람을 막아주는 당신의 가지를 존경이라고해야하나, 존중이라고해야하나. 잘 모르겠습니다.하지만, 그늘에 가려 나의 여린 잎은 빛을 잃은 느낌이었습니다.당신은, 뿌리 내린 깊은 상처는 아물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문득 당신의 꼭대기를 봅니다홀로 모든 비바람과 벼락을 맞는 자리그 무게, 그 외로움은 얼마나 시릴까요.마음 한구석이 시큰, 아파옵니다존경과 상처, 그 사이 어디쯤에서나는 이제 미움을 거둡니다엉..
2025.07.04 -
아침 지하철
새벽을 가르는 강철 상자,흔들리는 삶의 무대 위로저마다의 풍경이 떠오른다. 고개를 떨군 채밤의 나머지를 꿈꾸는 이, 작은 창에 시선을 던져세상을 읽는 이,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자신만의 세계인 이, 어깨 위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무게가고스란히 내려앉은 지친 눈빛. 분주한 발걸음들은 다 어디로 향하는가.사무실의 불빛, 강의실의 소음 속으로오늘이라는 역을 향해 묵묵히 달려간다. 문득, 먼지 쌓인 필름이 돌아간다.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그 아침,회사를 향하던 발걸음은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고가슴을 채우던 뜨거운 공기는‘보람’이라는 이름의 설렘이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연료 삼아 타오른다더니,오늘의 풍경 위로 어제의 영상이 겹쳐온다.창밖은 오늘을 비추지만내 마음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덜컹이는 시간의 열차에..
2025.07.03 -
어른들의 소꿉놀이
네모난 책상 위, 각자의 왕국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서로의 성을 엿본다 커피 잔 부딪히는 소리 뒤엔교묘한 고자질이 숨어있고회의실 문이 닫히면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 된다 한 뼘 더 넓은 모래성을 쌓으려한 치 더 높은 의자를 차지하려어른의 탈을 쓰고 벌이는유치한 땅따먹기 놀이를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토라지고누구의 줄에 설까 눈치 보는 모습차라리 운동장에서 편을 가르는아이들의 전쟁이 더 솔직하겠다 결재 서류 위 붉은 펜보다등 뒤에 꽂히는 눈빛이 더 서늘한 곳오늘도 우리는 초등학생보다 못한어른들의 소꿉놀이를 한다.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