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기울인 날..

2025. 7. 15. 21:25슬기로운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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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저녁, 오랜만에 이사님과 술잔을 기울였다. 갓 구워낸 곱창의 고소한 냄새와 함께 소주잔이 오가는 사이, 이사님의 깊은 주름만큼이나 짙은 세월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10년이 넘었지. 그룹사 여기저기, 내가 원하지도 않던 자리들을 돌면서..."

담담하게 시작된 이야기 속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본래의 전문 분야가 아닌, 때로는 전혀 알지 못했던 다른 업무까지 떠맡아야 했던 지난 세월. 회사의 필요라는 명목 아래,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몇 해 전, 형수님이 갑작스레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위독하다는 말에 마음이 너무...아파왔던 기억. 오늘, 이사님은 술잔을 채우며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이제 나한테 최우선 순위는 회사도, 자식도 아니야. 와이프, 집사람이 내 첫 번째야."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화려한 성공이나 명예보다, 사랑하는 아내의 곁을 지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음을.

그래서 지금은 그저 버티는 것이 목표라는 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의 배려든, 혹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든, 지금의 자리에서 최대한 견뎌내는 것. 그것이 아내를 위한, 그리고 가족을 위한 이사님의 최선이라는 것을...

문득 제 나이를 실감한다. 젋은 날에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인생이란 참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원치 않는 길을 걸어야 했고, 예상치 못한 시련에 주저앉기도 했다.
이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히 조심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이사님, 이제 제2의 인생을 조금씩 준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저도 아직 막막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예측 불가능한 인생의 파도 앞에서, 때로는 묵묵히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시기.

술잔이 비워질수록 이야기는 깊어지고, 밤은 고요해졌다. 거창한 위로나 해결책은 없었지만, 서로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밤이었다.

이사님, 부디 잘 버텨내시기를. 꿋꿋하게, 또 무탈하게.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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