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4. 12:33ㆍ슬기로운 직장생활?
'괴롭힘’과 ‘조언’ 사이, '침묵'
“요즘은 후배에게 무슨 말을 못 하겠어. 혹시 ‘꼰대’ 소리 들을까 봐, 나도 모르게 ‘괴롭힘’ 가해자가 될까 봐….”
최근 만난 한 팀장님의 씁쓸한 푸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강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영혼을 짓밟는 행위가 ‘업무의 일부’나 ‘조직 문화’라는 이름으로 용납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3명이 괴롭힘을 경험했을 정도로 심각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진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이 소중한 변화의 이면에는 새로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 않을까? 바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진심 어린 조언’마저 ‘괴롭힘’이라는 낙인 아래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1. 우리는 왜 침묵하게 되었는가: ‘방어적 리더십’의 확산
직장 내 괴롭힘은 인격에 대한 모독, 사적인 심부름, 부당한 업무 지시 등 명백한 범죄 행위다. 우리는 그 피해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가해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괴롭힘’의 경계가 때로 모호하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특히 업무에 대한 피드백 과정에서 그 딜레마는 극대화된다.
예를들어, 김 팀장은 신입사원 박 주임이 제출한 기획안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 이대로 진행되면 프로젝트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 김 팀장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 (과거의 방식) "박 주임, 이게 지금 보고서라고 쓴 건가? 생각이란 걸 하고 일하는 건가?" -> (명백한 괴롭힘)
- (대안 1) "박 주임, 이 부분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고 시장 분석이 잘못됐어요.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 (강한 질책, 과연 괜찮을까?)
- (대안 2) "박 주임, 수고했어요. 그런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네요. 제가 일단 수정해 둘게요." -> (가장 안전한 길, 그러나...)
많은 리더들이 ‘대안 2’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질책이 가져올 감정적 소모와 ‘괴롭힘 신고’라는 잠재적 리스크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일을 떠안고 마는 ‘방어적 리더십’이다. 실수를 반복하는 후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조금은 쓴소리를 건네고 싶지만, 그 진심이 ‘인격 모독’으로 비칠까 두려워 입을 닫는다. 팀 전체에 피해가 갈까 봐 밤잠 설쳐가며 후배의 보고서를 붙들고 씨름하면서도, 정작 당사자에게는 제대로 된 피드백조차 건네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 침묵의 대가: ‘온실 속 화초’와 ‘가짜 평화’
이러한 ‘침묵의 문화’는 결국 조직 전체를 서서히 병들게 한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첫째, 개인의 성장이 멈춤. 쓴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란 직원은 ‘온실 속 화초’가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개선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더 큰 무대에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성장은 편안함이 아닌, 건강한 긴장감과 때로는 아픈 피드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조직은 ‘가짜 평화’에 안주. 서로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 조직은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실수가 방치되고, 낮은 품질의 결과물이 용납되며, 조직 전체의 경쟁력이 좀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가짜 평화’는 결국 더 큰 위기를 불러오는 고요함일 뿐이다.
3. 해법: ‘괴롭힘’과 ‘피드백’을 분리하는 용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딜레마를 해결해야 할까? 해법은 괴롭힘과 피드백을 명확히 분리하고, 건강한 피드백이 오고 갈 수 있는 ‘심리적 안전지대’를 조직 안에 구축하는 것이다.
- 괴롭힘은 ‘사람’을 향한다. "넌 왜 맨날 그 모양이야?"처럼 인격을 공격하고 모욕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 피드백은 ‘행동과 결과’를 향한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번과 같은 실수가 반복됐어요. 원인이 뭘까요? 다음엔 이 부분을 함께 확인하고 넘어갑시다"처럼 문제 해결과 성장을 목표로 한다.

진심이 오해받지 않고, 건강한 피드백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은 리더 한 사람의 노력을 넘어 조직 전체의 과제일 것이다. 괴롭힘이라는 암세포는 단호히 도려내되, 성장을 위한 ‘건강한 긴장감’과 애정 어린 ‘쓴소리’마저 사라지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침묵이 후배의 성장 기회를 빼앗고, 조직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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