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의 무게

2025. 7. 16. 07:48슬기로운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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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어깨가 무거운 날이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습한 밤공기 속에서 문득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할 말은 분명 있겠지. 모든 상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서 결론을 내리는 내 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만, 어쩌면 이건 너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단단한 프로세스가 있었다면, 누군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지.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비극일 수도,,
 
하지만, 너는 결재를 했다.
 
수많은 검토와 보고서의 가장 마지막 칸에 너의 이름이 적혔있다. 그것은 단순한 서명이 아닌 것을 알지 않니?. 최종적인 확인이자,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무언의 약속인 것을 너도 알것이다. 수많은 물줄기를 막아서는 마지막 댐처럼, 그 결재란에는 모든 것을 받아내고 감당해야 할 무게가 실려 있지.
 
프로세스가 없었다는 항변도,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설명도 그 무게 앞에서는 힘을 잃잖아. 왜냐하면 그 마지막 결재의 순간, 너는 그 모든 불완전함과 위험을 인지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한 것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바로 '결재권자'라는 자리가 감당해야 할 숙명일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내 손의 펜 역시 가볍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 또한 내 역할의 무게를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미안하다. 너 개인에게 악감정은 없다. 하지만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구나. 그것이 바로 너의 이름 석 자를 걸고 감당해야 했던 '결재'라는 행위의 무게일 테니...
 
'결재'라는 두 글자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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