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같은 일상(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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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카메라
요즘 자극적인 몰카 영상들이 많아서 잘 안 찾아보는 편이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난처하게 만들어서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우연히 본 이 영상은 좀 달랐다. 왜 노숙자가 됐나요?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몰카인 줄 알았는데, 영상을 보니 서울역의 노숙자분들께 따뜻한 도시락을 나눠드리는 내용이었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힘겹게 지내시는 분들의 현실적인 모습과 그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분과의 인터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노숙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데 마음이 아팠다. 어릴 적 꿈이 고아원 원장이었다는 분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지금은 그..
2025.07.21 -
하늘의 날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을까. 갤러리 속에 잠들어 있던 이 사진을 보니, 그날 저녁의 서늘했던 공기와 감정이 다시 파도처럼 밀려온다.아마도 빨간 신호등에 잠시 멈춰 섰을 때,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잠시 멍하니 본것같다..짙은 벨벳 같은 남색 하늘 아래로, 마치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한 구름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지평선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붉은 노을의 잔상이 그 날갯짓에 신비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고.어지럽게 얽힌 전선들, 길을 밝히는 주황색 가로등, 그리고 나를 잠시 멈춰 세운 저 붉은빛.이 모든 지극히 일상적인 요소들이 저토록 비현실적인 하늘과 어우러져, 오히려 더 묘한 느낌을 주더라. 아주 평범한 나의 공간 바로 위에서, 뭔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이 사진 한 장이 다 담..
2025.07.20 -
빗방울
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규칙적인 듯 불규칙적인 그 리듬은 마치 오래된 자장가처럼 귓가에 맴돌며 복잡했던 생각들을 잠재운다. 회색빛으로 물든 세상, 그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풍경은 마치 수채화 물감 번지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투명한 구슬처럼 매달린 빗방울들이 존재한다.하나하나의 빗방울은 작은 세계를 품고 있다. 굴절된 빛 속에서 주변의 풍경은 일그러지고, 새로운 형태를 띤다. 선명하게 초점이 맞춰진 빗방울 안에는 지금 이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반면, 그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세상은 과거의 기억처럼 아련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처럼 불확실하게 느껴진다. 이 대비되는 풍경 앞에서, 나는 시간의 경계에 갇힌 듯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가슴 한켠이..
2025.07.19 -
혐오 사회
요즘 인터넷 뉴스창을 열기가, 가끔은 두렵다.스크롤을 조금만 내려도 보이는 날 선 단어들에 마음이 턱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경계심과 불신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곤 한다.언제부터였을까.우리 사회가 이토록 서로를 미워하는 게 당연해진 것인가.남자라서, 여자라서. 나이가 많아서, 어려서. 생각이 달라서, 사는 지역이 달라서.너무나 많은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고 손가락질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나와 조금 다른 모습을 한 사람에게 ‘벌레 충(蟲)’자를 붙여 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한 사람의 작은 실수를 공동체 전체의 잘못인 양 몰아가는 광기를 볼 때면, 이 거대한 미움의 파도..
2025.07.19 -
나이 듦
세월의 향기서리 내린 머리칼 아래날카로운 말이 흩어지던 날쌓인 세월은 지혜가 아닌모진 바람이 되었나후배들의 마음에생채기를 남긴 그 말들나는 어떤 세월을 살아어떤 말을 남길까창가에 앉아하얀 종이를 바라본다펜 끝에 맺힌 침묵의 무게한 자 한 자, 마음을 새긴다세월이 깊어갈수록말에는 향기가 배어나길지적의 칼날 대신이해의 온기가 흐르기를나의 언어는누군가에게 상처가 아닌따스한 쉼터가 되기를그리하여 먼 훗날내 삶의 마지막 장에는포용이라는 이름의아름다운 시 한 편 남기를
2025.07.19 -
등불
칠흑 같은 어둠이 발끝을 적시고세상의 모든 소음이 나를 할퀼 때나는 외로이 작은 섬처럼 떨고 있었네 고개를 들 용기조차 희미해질 무렵등 뒤에서 스며드는 따스한 온기에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보았네 거기, 말없이 나를 지켜보는 눈빛들세월의 주름 속에 걱정을 담은 어머니와굳건한 어깨로 바람을 막아주는 아버지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눈물 닦아주는 형제가 나의 세상이었고, 나의 우주였던이들이 묵묵히 등불을 들고 서 있었네 그러니, 괜찮다.두려워하지 마라. 거친 파도가 너를 덮치려 해도세상 모든 것이 너를 흔들려 해도네 등 뒤에는 결코 꺼지지 않을 등불,가족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우주가 있으니.
202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