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도시락에 대한 기억

2025. 6. 26. 06:35낙서같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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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왁자지껄한 교실

누군가의 도시락에선

분홍빛 소세지가 문어처럼 웃고

따스한 김 오르는 계란 후라이가

해가 뜨듯 놓여 있었다

 

다른 누군가의 도시락엔

시큼하게 익은 김치 하나가 전부였고

교실 한구석, 그마저도 없어 빈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구던 아이가 있었다

꿀꺽, 마른침 삼키는 소리만이

그 아이의 유일한 반찬이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김치만으로 허기를 채우던 그 아이는

배고픔에 지쳐 책상에 엎드려 있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따뜻한 밥을 먹고는 있을까

사는 게 힘에 부쳐 울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소세지 반찬도, 친구의 웃음도 없이

홀로 섬이 되어 앉아 있던 나

비수처럼 날아와 박히던 말들을

밥알처럼 억지로 삼켜야 했던 나

 

그때는 소세지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지만

어쩌면 나는,,,,

"같이 먹자" 그 한마디가 더 고팠는지 모른다

 

잊고 살았다 믿었는데

오래된 필름처럼 문득 떠오르는 그날의 점심시간

마음 한구석에 남은 희미한 얼룩

오늘따라 유난히 시리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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