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4. 21:08ㆍ슬기로운 직장생활?

정신 차리자. 거울 속의 나에게, 그리고 어제의 나에게 쓰는 글이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나?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고, 갈등을 피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미덕이라 믿었나? 그래서 누군가 의견을 내면, 그게 좀 이상하고, 데이터와 맞지 않고, 심지어 내 양심에 어긋나도 일단 고개부터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시죠."
그 결과는 어땠지?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었나?
아니. 그냥 '만만한 사람', '자기 의견 없는 사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게 촌철살인이고 팩트폭행이라고?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회사에서 무조건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면 안 되는 이유를 새겨야 할 시간이다.
"일단 해보죠"가 부른 대참사
상황 : 김팀장이 회의에서 외쳤다. "요즘 Z세대는 무조건 숏폼입니다! 우리 신제품 홍보, 인스타그램 릴스랑 틱톡으로만 갑시다! 예산 전부 투입하죠!"
과거의 나 : (속마음: '우리 제품 주 고객층은 4050인데? Z세대는 우리 제품에 관심도 없는데?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는데?') "네, 팀장님! 역시 트렌드를 잘 아십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결과 : 수천만 원의 마케팅 예산이 허공에 뿌려졌다. 타겟이 아닌 Z세대는 광고를 넘겨버렸고, 정작 우리 제품을 구매할 4050 고객은 광고를 구경조차 못했다. 실적은 처참했고, 연말 평가는 바닥을 쳤다. 책임은? 당연히 실무자인 나에게도 일부 돌아왔다. "시키는 건 잘하는데, 왜 중간에 피드백이 없었어?" 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들으면서,,
정신 차린 나라면 했어야 할 말 : "팀장님, 좋은 아이디어십니다. Z세대 타겟 확장도 중요하죠. 다만, 지난 분기 매출 데이터에 따르면 저희 주력 구매층은 4050으로 나타납니다. 이분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Z세대로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예산의 70%는 기존 타겟에 집중하고, 30%를 숏폼 콘텐츠에 테스트로 집행하며 성과를 보는 겁니다."
이게 싸가지 없는 태도인가? 아니다. 이게 바로 올바른 태도다. 회사는 나에게 월급을 주며 '네'라고 대답하는 인형을 고용한 게 아니다. 나의 지식과 분석력, 그리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책임감을 고용한 것이다. 음..아니지, 적절히 눈치보면서 슬쩍 말을했어야했다.
"제가 하겠습니다"가 만든 무덤
상황 : 박대리가 도저히 불가능한 마감일을 제시하며 말했다. "이거 디자인 시안 3종, 내일 오전까지 가능하죠? 간단한 거잖아요."
과거의 나 : (속마음: '이걸 하려면 오늘 밤 새고 내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하는데? 퀄리티는 보장도 못하고...') "아...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결과 : 밤을 새워 시안을 만들었다. 퀄리티는 조악했고, 오타와 버그가 가득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박대리에게 된통 깨지고 재작업 지시를 받았다. 나의 시간, 나의 건강, 나의 평판만 나빠졌다. 박대리는 나를 '실력 없는 사람'으로 기억하게 됐다.
정신 차린 나라면 했어야 할 말 : "대리님, 이 작업은 단순히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 A와 B, C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퀄리티를 보장하면서 3종의 시안을 만들려면 최소 이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혹시 내일 오전까지 꼭 필요하시다면, 시안을 1종으로 줄이거나, 핵심적인 부분만 보여드리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방향이 더 좋으실까요?"
거절이 아니다. 이건 '조율'이다. 무능력해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프로젝트의 전체 공정을 이해하고 관리할 줄 아는 유능한 사람으로 보인다. 불가능한 요구에 '네'라고 답하는 순간, 그 실패의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는 걸 잊지 마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집에 두고 출근하자
회사는 친구를 사귀러 오는 곳이 아니라, 가치를 증명하고 그 대가를 받는 전쟁터다.
무조건적인 수용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포기하는 행위다.
나의 생각, 나의 데이터, 나의 직관을 무시하는 것은 월급을 받으면서 회사를 기만하는 것과 같다. 즉, 돈값을 못한다는 거지.
물론, 의견을 제시할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태도는 정중해야 한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가 아니라, "이런 데이터에 근거하면, 이런 대안은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무조건적인 끄덕임을 멈추는 것에서부터다.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다.
무조건적인 동의는 배려가 아니라,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칼날이다.
그러니 제발, 내일부턴 그냥 '네네'하지 말자.
질문하고, 데이터를 들이밀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된다.
그게 이 치열한 직장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그런데,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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