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포기'

2025. 7. 11. 07:48슬기로운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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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0대 경력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게임업계 신입으로 지원하는 현상을 조명한 기사를 봤다. 기사는 이를 높은 연봉과 복지, 커리어 만족도 덕분인 것처럼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게임업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화려한 데이터와 장밋빛 전망 뒤에 가려진, 어쩌면 더 현실적이고 냉혹한 이면을 이 있다. 과연 30대들의 '경력 포기'는 희망찬 도전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 도피일까?

1. '중고 신입'은 기업에게만 유리한 '경력 할인'일 뿐이다.

기사는 '중고 신입'의 유입이 활발하다고 분석하지만, 이는 구직자 입장에서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중고 신입'이라는 말은 이미 다른 분야에서 사회 경험과 직무 능력을 쌓은 인재를 '신입'이라는 이름으로 저렴하게 채용하겠다는 기업의 속내를 보여주는 단어일 뿐.

 

 

30대 지원자는 이미 어느정도 조직 생활,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 값비싼 '소프트 스킬'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업은 이 모든 무형의 자산을 신입 연봉으로 얻게 되는, 그야말로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본다. 반면, 지원자는 수년간 쌓아온 자신의 경력을 스스로 부정하고 '리셋'해야만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있고, 이것이 과연 건강한 인재 유입 현상인가? 오히려 경력직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부정당하고, 신입 채용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2. '활발한 구직 활동'의 착시: 잦은 이직은 불안정성의 다른 이름이다.

기사는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는 업계 특성상 이직과 구직이 잦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를 '활발하다'고 포장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 것이다. 잦은 이직의 이면에는 고용 불안정성, 기약 없는 프로젝트 일정, 살인적인 업무 모드로 인한 번아웃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누적 입사 지원 건수가 89만 건에 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현재 자신의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탈출구를 찾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나의 공고에 수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과열 경쟁 속에서 구직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좌절을 겪을 것이고, 이것은 희망의 사다리가 아니라, 소수만이 살아남는 위태로운 외나무다리에 가깝지 않을까?

3. 꿈과 현실의 미스매치: RPG 공화국에서 질식하는 창작의 열망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한 대목은 기업과 구직자 간의 선호도 차이다. 기업의 52%가 '모바일 게임' 인재를 원하고, 38%가 'RPG' 장르를 선호하는 동안, 구직자들은 온라인,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과 장르에 관심을 보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기업들은 이미 검증된 돈벌이 수단인 '모바일 RPG'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인재들은 더 새롭고 창의적인 도전을 꿈꾼다는 것이다. 결국 많은 개발자들은 자신의 창작 열망을 접어둔 채, 비슷비슷한 양산형 RPG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 '게임이 좋아서' 업계에 들어왔지만, 정작 만들고 싶지 않은 게임을 만들며 열정이 소진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중고 신입'의 증가는 게임업계의 매력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 경력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채용 시장의 왜곡과 다른 산업의 불안정성이 겹쳐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일 수 있다고 본다.

이 현상을 보며 "역시 게임업계가 최고야"라고 환호할 것이 아니라, "왜 30대 전문 인력들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면서까지 신입으로 지원해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만 회사는 진정으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경력을 포기한 그들의 '도전'을 낭만적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뭐, 늘 그렇듯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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