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인간

2025. 7. 10. 07:56슬기로운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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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인생 2막’이라는 희망찬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은퇴 후 비로소 자유를 찾고, 새로운 꿈에 도전하며 황금기를 보낸다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훌륭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멀고 비현실적인 동화일 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각은 해방감이 아닌, 짙은 정적과 막막함일 것이고, 지난 30년간 나를 깨우던 알람 소리도, 출근을 재촉하던 아내의 목소리도 없을것이다.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아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나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고민한다. ㅠ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의무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라고. 하지만 수십 년간 누군가의 상사, 동료, 부하직원 그리고 가장으로 살아온 나에게 ‘역할이 없는 나’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명함이 사라지자 제 이름 석 자도 함께 사라진 기분이겠지. 사회라는 톱니바퀴에서 빠져나온 나는, 이제 어디에도 쓸모없는 부품이 될 것만 같아 두렵다.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되어버린 경험

긍정적인 은퇴일기들은 지난 세월의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산을 알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 재취업을 위해 문을 두드려 본 몇몇 곳에서는 제 나이와 경력을 부담스러워하겠지. 지금도 퇴직하면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평생 쌓아온 노하우는 그저 ‘과거의 유물’일 뿐일 것이다. 그 노하우가 이제는 답이 되지는 않겠지.

 

가끔 요즈음 MZ 직원의 말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왠지 이방인이 된 듯한 소외감과 함께 ‘나는 이제 뒤처졌구나’하는 패배감은 아니어도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든다. 

 

끝나지 않은 현실, 돈과의 전쟁

‘주인공이 되는 삶’이라는 말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현실의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나 지쳐있고, 주머니 사정은 팍팍하기만 하다. 퇴직금은 자녀 학비, 결혼비용, 병원비로 빠져나갈것이고, 연금은 제대로 받을 수 있으려나, 아니 생활이 되려나,

 

아내가 취미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과연 선뜻 그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공원을 산책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소박한 일상이 자유가 아닌, 돈이 들지 않는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을 때, 그 안에서 무슨 여유와 낭만을 찾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남은 20~30년의 삶은 기대가 아닌 불안으로 다가올 것 같다. 

 

  

 

누군가는 은퇴를 새로운 시작이라 말하지만, 반대로 은퇴는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단절’이자, 사회의 구성원에서 배제되는 ‘소외’일 것이다. 이 무기력과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다. 과연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이 글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화려한 제2의 인생이 아닌, 잿빛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선배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잘 사는 법’ 이전에, 이 막막한 시간을 ‘잘 버텨내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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