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인의 책상 앞
어둠이 내려앉은 사무실, 모니터의 푸른빛만이 외롭게 책상을 비춘다. 서류와 숫자들이 빼곡한 이 공간에서 나는 회사의 혈관을 흐르는 피를 검사하는 의사와 같은 존재다. 때로는 건강한 혈액의 흐름에 안도하지만, 때로는 혈관을 막고 조직을 썩게 만드는 위험한 혈전, 즉 '부정'의 징후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무뎌질 법도 한데, 매번 새롭게 마음을 다잡게 된다. 유혹에 넘어간 동료의 무너진 삶을 마주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더욱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나 자신에게 글을 쓴다.
첫째, 모든 부정은 '이번 한 번만'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에서 시작된다.
가장 무서운 말이다. "이번 한 번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하는 관행인데". 이 속삭임에 귀를 여는 순간, 양심의 둑에 첫 균열이 생긴다.
"사소한 관행이라는 이름의 개미굴이 결국 회사라는 댐을 무너뜨린다."
처음에는 법인카드로 개인적인 식사를 해결하는 작은 관행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개미굴은 점점 넓어져 거래처로부터의 작은 선물을, 그리고 결국엔 거대한 리베이트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다.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무감각해진 도덕성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나는 숫자 뒤에 숨은 '관행'이라는 변명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완벽한 비밀은 없다는 진실을 기억하라.
부정을 저지르는 이들은 대부분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자신만의 치밀한 계획과 알리바이를 믿는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CCTV는 피할 수 있어도 동료의 눈은 피할 수 없고, 동료의 눈을 피했더라도 스스로의 양심은 결코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완벽한 범죄는 없다. 모든 거래에는 흔적이 남고, 모든 소문은 꼬리를 남긴다. 무엇보다, 무너진 양심은 반드시 삶의 태도와 표정 어딘가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부정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속아 넘어가야 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깨지게 되어있다. 진실은 잠시 가릴 수 있어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셋째, 순간의 유혹으로 얻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
부정을 통해 얻는 금전적 이익, 그 달콤함은 얼마나 갈까? 그 돈으로 산 명품, 고급 차가 과연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줄까?
"부정으로 쌓아 올린 탑은, 결국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거나 무너져 내릴 무덤이 될 뿐이다."
순간의 유혹과 맞바꾼 것은 돈 몇 푼이 아니다. 동료들의 신뢰, 가족의 자부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이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는 다시 쌓기 어렵고, 한번 찍힌 낙인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부정으로 얻은 재물은 결국 소송 비용으로, 망가진 평판을 수습하는 비용으로 사라지거나, 남은 인생을 불안과 후회 속에서 살게 하는 족쇄가 될 뿐이다.
나의 일은 누군가를 찾아내 처벌하는 '사냥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병들게 하는 위험 요소를 미리 찾아내고, 건강한 조직 문화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악역을 자처해야 하고, 때로는 원망의 눈초리를 받아야 한다.
서류 더미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떳떳한가?' '나의 원칙은 바로 서 있는가?' 이 서늘한 질문 앞에서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기를.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자, 이 길을 걸어가는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