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장생활?

이 나이에 다시, 괜찮을까?

푸른 달무리 2025. 8. 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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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을 앞둔 나에게 보내는 편지: "이 나이에 다시, 괜찮을까?"

어느덧 쉰이라는 나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은 아직 청춘 언저리를 맴도는 것 같은데, 몸은 정직하게도 세월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잠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기보다 뻐근함이 먼저 찾아오고,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작은 충격에도 흠칫 놀라곤 한다. ‘온몸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이제야 내 이야기가 되었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였을까. 매년 연례행사처럼 치러야 했던 수술대 위의 기억, 어느 날 갑자기 '뚝'하고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찾아왔던 근육 파열의 고통. 마치 내 몸과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온 기분이다. 잦은 부상과 통증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문득,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지금의 내 몸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또다시 무리하다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될까 봐, 혹은 운동을 시작해도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에 실망하게 될까 봐. 통증이 없는 날보다 아픈 날이 더 익숙해져 버린 지금,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는 '운동'이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대, 30대의 나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며 한계에 도전하는 것만이 운동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운동은 '경쟁'이 아닌 '대화'에 가깝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통증을 다스리며, 굳어진 근육과 관절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시간.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새로운 의미의 '운동'이 아닐까.

  • 거창한 목표 대신, 딱 10분만이라도 걸어보는 건 어떨까? 헬스장이 아니어도 좋다.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거닐며 햇볕을 쬐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격렬한 움직임 대신, 뻣뻣하게 굳은 몸을 부드럽게 늘려주는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면 된다.
  • 내 몸의 부담을 덜어주는 운동을 찾아보자. 요가나 필라테스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필라테스를 해보련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꾸준히' 하느냐다. 조급해하지 말자. 어제의 나보다 단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였다면, 그걸로 대단한 것이다. 통증이 느껴지면 무리하지 않고 쉬어가자. 

쉰을 맞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돌봐야 하는 시작점이다. 몸이 보내는 통증은 '이제 그만 쉬어'라는 포기 신호가 아니라, '나를 좀 더 소중히 다뤄줘'라고 보내는 간절한 요청일 것이다.

괜찮다. 넘어진 경험이 있기에, 이제는 넘어지지 않고 걷는 법을 더 잘 알게 될 테니까. 오늘부터, 아주 천천히, 내 몸과 다시 친해져 보자.

2025년 늦여름의 문턱에서, 쉰을 앞둔 내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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